티스토리 뷰

안녕하세요 최근 1987이라는 영화가 전 국민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아직도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서 눈물을 흘리던 관객들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와 당시 벌어졌던 사건들의 실체에 대한 정부의 사과 및 조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건에 대해서 이미 지난 일이라는 평가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행동을 폄훼하거나 비하하는 행위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린시절부터 518사건에 대한 자료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배부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세대로서 이러한 표현들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518 당시의 참상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얼마 전 송강호가 주연을 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개봉을 했었습니다. 어머니가 광주에 사셨기때문에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는지에 대해서 여러차례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에 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전혀 모르셨다고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두환의 독재 군대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던 일이 벌어진 사건입니다.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이 아니었지만 보안사령관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 사망 후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이 저지른 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를 주제로 한 많은 영화들이 있는데요. 김상경과 이요원이 주연한 '화려한 휴가',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 진구 한혜진 등이 출연한 웹툰 원작 '26년' 등 다양한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거세졌고 전국적으로 비상계엄령이 확대됩니다. 당시 계엄령과 겨울 방학들로 인해서 12.12에 대한 저항은 3~4월경부터 시작되었고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는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당시 계엄군은 광주로 들어가는 교통과 연락 등을 막고 광주 시민들을 향해 폭력뿐만 아니라 총기발사 등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된 바에 따르면 숱한 민간인 부녀자들 학생들 강.간 또한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당시 독일인 기자였던 슈피겔지가 아니었다면 이 사실은 해외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을지도 또한 얼마나 더 악화되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후 여러차례 조사를 통해서 이 일이 국가적으로 이루어 진 일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나 전두환은 끝까지 본인이 명령한 일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SBS가 2018년 보도한 미국무부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최종 진압작전을 명령한 최종 책임자는 전두환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안으로 총알이 날아들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지금도 한 집 건너서 한 집 피해자와 연관이 있다고 할 정도로 큰 상처를 남겼던 사건입니다. 당시 계엄군으로 학살에 참여했던 군인들 또한 피해자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중에 많은 사람들은 물놀이를 하러나온 초등학생이나 헌혈 피켓을 들고 있는 여고생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나 임산부까지 무차별적으로 쏴죽이고 폭행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양심선언을 했던 일부 당시 공수부대원들은 동료들의 살해협박에 까지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들에게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상당수는 공범인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민주화운동 가운데 직접적으로 사망한 숫자로 집계된 것이 193명이며 후유증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고문피해자 1589명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당시 불법으로 광주 교도소 근처에 수 많은 시체를 묻는 장면을 봤다는 증언도 있으나 아직 유해가 발굴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헬기에서 총을 쐈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군에서 지속적으로 그 사실을 부인하다가 2017년 처음으로 그 사실 및 총알 자국 등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검을 장착하고 사람들을 찌르고 실탄을 얼굴을 향해 발생하여 끔찍하게 살해된 사람들의 생생한 사진들도 자료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당시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사진들은

블로그 심의 규정을 통과할 수 없어서

직접 자료 게시글은 아래에서 확인해주세요



중요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내밀하게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민족반역행위나 국가적인 범죄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책임이 너무나도 미약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당시 가담자들의 인터뷰에는 광주는 폭동이며 당시 북쪽에서 보낸 특수부대원 천여명이 섞여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중봉기는 조선시대때부터 국가에 의해 진압되는 경우 누구누구의 난으로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는 등의 소리를 합니다. (인터뷰 중 살짝 공개된 집은 일견 보기에도 상당히 큰 집에 살고 있는 것 같아보였습니다.) 



누군가는 아직도 광주 민주화항쟁을 좌익 봉기취급합니다. 하지만 지금보아도 수많은 태극기와 애국가가 울려퍼지던 당시 광주의 장면을 찾아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있는 사안에 대해서 가해자들은 너무도 뻔뻔하게 자기 주장만을 펴고 있습니다. 독일의 전범 처리와 너무나도 대조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518이 올때면 누군가의 자녀였고 누군가의 아비였던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의한 범죄에 의해서 아깝게 스러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518은 호국영령의 죽음이라기 보다는 국가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을 보여준 사건으로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되는 사건으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사진들은

블로그 심의 규정을 통과할 수 없어서

직접 자료 게시글은 아래에서 확인해주세요


광주 518 참상 사진


댓글